최근에 독일 베를린 동물원의 북극곰새끼 ‘크누트’에게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적이 있다. 그 이유는 북극곰 어미가 자연포유를 거부하자 동물원 측에서 인공포유를 결정했는데, 동물보호론자들이 동물들을 숙명대로 내버려두라고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인공포유란 사람이 직접 동물에게 젖을 먹여 키우는 것을 말한다.
동물보호론자들이 주장하는 숙명이란 새끼가 죽고 사는 것 자체도 타고난 운명이니 그냥 어미에게 맡겨두고 지켜만 보자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차라리 ‘안락사’ 시키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아무튼 그 난리 통에서도 크누트는 아직까지 사람의 인공포육 아래 잘 자라고 있다.
왜 북극곰 어미는 포유를 거부했을까? 사실 동물원에서 북극곰 탄생은 거의 해외토픽감이 될 정도로 드문 일이다. 주로 기후가 자연환경과 비슷한 북유럽 쪽 동물원에서 북극곰 탄생 소식이 가끔 들려온다. 극히 예외적으로 최근 열대지방인 싱가폴 동물원에서 북극곰이 탄생해 전문가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적이 있다.
이렇듯 탄생도 극적이지만 그 곰을 양육하는 것 역시 또 하나의 드라마를 써야 할 만큼 어렵다. 까다로운 동물들은 원치 않는 임신을 했더라도 보통 분만하는 걸로 자기 책임을 모두 끝내버리려 한다. 모성도 물론 강력한 본능이지만, 자기도 살기 힘든 환경에 새끼들을 내 맡기느니 차라리 조기에 정리해 버리자는 의도가 짙게 깔려있는 듯 보인다.
동물원 호랑이나 사자에게서도 새끼를 낳은 채 방치하거나, 키우다가 잡아먹는 일이 종종 생긴다.
이를 통상 ‘식자증(食子症)‘이라 부르는데 심지어 초식성 동물인 토끼나 원숭이에게서도 이런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이 식자증은 두 가지 패턴을 보인다. 하나는 죽은 새끼를 어미가 먹는 경우고 또 하나는 잔인하게도 산채로 먹어 버리는 경우이다. 후자 쪽이 더 자극적인지라 언론에 종종 언급되지만 내가 보기엔 전자 쪽의 식자증이 더 많이 일어난다. 이런 행위는 일종의 장례의식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이 슬픔에 겨워서 먹는다는 증거는 평소 잘 먹지 않는 머리부분부터 먹는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위험요소 때문에 사육장에서는 귀한 동물일수록 아예 처음부터 인공포유를 실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공포유는 자연포유보다 훨씬 더 어려운 기술이다. 그래서 요즈음은 돼지나 온순한 개처럼 중간동물을 이용한 반 자연포유 방법이 이용되기도 한다. 가령 호랑이 새끼를 돼지에게 붙인다든지 돼지 새끼를 호랑이에게 붙이는 것도 가능하다. 원래 새끼를 잘 키우는 동물은 천성적으로 어느 새끼에게든 모성애를 나타내는 경향을 보인다.
효율을 따지면 육식동물의 경우 안정적인 자연포유시 새끼 생존률이 인공포유시보다 2배정도 더 높고, 초식동물은 3배 이상이다.
이렇게 자연포유가 좋은 이유는 바로 어미만이 줄 수 있는 초유(colostrum)와 장내 미생물총이 있기 때문이다.
초유는 분만 직후 일시적으로 나오는 어미의 특수한 젖이다. 새끼가 이 젖을 빨면 초유의 유효성분은 소화되지 않고 일시적으로 열려있는 ‘장혈관 문합경로’를 통해 그대로 새끼의 핏속에 흡수된다. 이 초유에는 영양소뿐 아니라 IgA, IgG 라는 면역단백질이 농축돼 있어 새끼를 광범위한 감염으로부터 약 2달여 동안 보호해 준다. 면역력이 전혀 없는 새끼에게 면역력을 외부로부터 줘서 지키는 것이다.
장내 미생물총은 그 종의 장에 가장 적합한 균들의 총합을 말한다. 어미는 새끼에게 이 미생물총을 직, 간접적으로 전달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코알라다.
코알라 어미는 생후 어느 시기부터 새끼에게 젖과 함께 엽기적이게도 자신의 똥을 먹이기 시작한다. 이 똥 속엔 유칼립투스 나뭇잎을 소화시킬 수 있는 미생물들이 가득 들어있다.
유칼립투스 잎은 독성이 있어 이 미생물이 장내에 정착되지 않고서는 코알라가 먹어도 소화시킬 수 없다.
코알라뿐만이 아니다. 거의 대부분 초식동물의 어미는 새끼의 반추위가 성장하는 약 3개월 동안 계속해서 조금씩 자기 똥을 먹게 한다. 역시 자신의 장내 미생물총을 고스란히 새끼에게 전달하기 위함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어미가 먹는 풀을 새끼도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새끼를 위한다고 어미가 먹는 것 이외에 다른 먹이를 주면 새끼는 소화불량에 걸려 버린다. 어미 역시 태어나는 순간부터 계속해서 새끼의 똥을 맛보면서 새끼의 장 상태를 점검한다.
똥을 주고받는 것뿐만 아니라 어미와 새끼 간에는 지속적으로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의 행동이 일어난다. 어미가 젖을 생산하면 새끼는 적극적으로 빨아야 하고, 어미가 이동하면 새끼들도 잽싸게 따라 움직여야 한다. 어쩔 땐 어미의 신호가 떨어질 때가지 제자리에 꼼짝 않고 엎드려 있기도 해야 한다. 북극곰 크누트는 어미와의 소통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인공포유를 선택하게 된 경우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모르는 것은 이 소통이 원활하게 보이는 새끼들조차도 어미가 무참히 버릴 때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새끼들을 거둬 키우다 보면 잘 크다가도 갑자기 죽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그들을 부검해 보면 대부분 그 원인이 내부의 선천성 기형임을 발견하고 경악하기도 한다. 이미 어미들은 새끼의 미래까지 예견하고 있을지 모른다. 크누트를 인공포유하기로 한 결정이 정말로 옳았는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일이다. (글 : 최종욱 야생동물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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