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비록 우리가 가진 것이 없더라도
바람 한 점 없이
지는 나무 잎새를 바라볼 일이다.
또한 바람이 일어나서
흐득흐득 지는 잎새를 바라볼 일이다.
우리가 아는 것이 없더라도
물이 왔다가 가는
저 오랜 썰물 때에 남아 있을 일이다.
젊은 아내여
여기서 사는 동안
우리가 무엇을 가지며 무엇을 안다고 하겠는가
다만 잎새가 지고 물가 왔다가 갈 따름이다.

위세가 권위가 어디 쯤에서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돈의 편안함이 잠시 희열 아닌 속마음까지 平靜하게 할 수 있는가?
다만 바람을 맞이하고 물 처럼 바닥을 따르면 그 것이 우리를 본디의 청정함으로 이끌지 않겠는가?

'나의 음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탁  (0) 2007.12.22
칠월의 소주  (0) 2007.12.22
봄 - 제 길을 찾는  (0) 2007.12.22
이런 사랑이었으면 합니다.  (0) 2007.12.22
그대옆에서  (0) 2007.12.22
세탁

          최영명 作

지워내고픈 과거에 세제 한 스푼 넣고 세탁기 돌린다.
돌아 돌아 끝 알 수 없는
회전이 너무나 힘차
그림자도 거품에 스며들고
사랑하는 이들 또한 부서져 내린다.
탈수와 함께 마지막까지
엉겨 붙은 위선도 하수구로
막힘없이 쏟아져 들어간다.
눈 부시도록 하이얀 더 이상 빨래 아닌
과거가 현재로 천천히 회전 멈춘다.

'나의 음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삶의 詩 1] 삶- 고은  (0) 2008.02.18
칠월의 소주  (0) 2007.12.22
봄 - 제 길을 찾는  (0) 2007.12.22
이런 사랑이었으면 합니다.  (0) 2007.12.22
그대옆에서  (0) 2007.12.22

칠월의 소주

              최영명 作

쪼그라져 가는 슬라브처마까지
칠월 햇살은 깊은 한숨 함부로 던져내
산 자의 무덤들이 마당에 널부로 지고
내 얼굴도 황토먼지 날리다
에메랄드빛 소주병 한참을
거꾸로 들이부어
"다 죽어 나자빠져야 할 세상이지"
몇번이고 곱씹어 보니
그제야 벌겋게 화색 돌아
소주는 황토물 걸러내고
말갛게 가슴 깊이 씻어 내린다.

'나의 음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삶의 詩 1] 삶- 고은  (0) 2008.02.18
세탁  (0) 2007.12.22
봄 - 제 길을 찾는  (0) 2007.12.22
이런 사랑이었으면 합니다.  (0) 2007.12.22
그대옆에서  (0) 2007.12.22
봄 - 제 길을 찾는
                 최영명 作

보라!
우리들의 가슴에 여전히 햇빛
길게 내리 쪼이는지!
겨울 잊혀져 내리고
남은 恨도 녹아내리는지!
돌아온 사람들 모두 다
우리 곁에 맴돌고
식었던 아랫목의 정겨움도
환히 겨울 낚아내는지!

보라!
그 끝없음에 그 거침없음에
붉은 피 새록새록 세상 덥히는지!
춤사위 마다에 흥은 절로 돋아나고
가야할 길은 고되지 않게
신명으로 이어져 나가는지!
황토먼지 굵은 빗방울에
주섬주섬 제자리로 돌아가는지
이제는 곧게 허리 세워 보라!

'나의 음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삶의 詩 1] 삶- 고은  (0) 2008.02.18
세탁  (0) 2007.12.22
칠월의 소주  (0) 2007.12.22
이런 사랑이었으면 합니다.  (0) 2007.12.22
그대옆에서  (0) 2007.12.22
이런 사랑이었으면 합니다.

                  최영명 作

이런 사랑이었으면 합니다.

길이 늘 단숨에 도착할 수 없이 멀어도
그 길 끝에서 당신을 종일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 서로를 어긋나도
사무친 그리움으로 서로를 보듬어 줄 수 있는,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가까이 있지 못해도
늘 부러지지 않는 버팀목이 될 수 있는,
그래서, 서로가 서로만을 응시하여
더 없이 따뜻하고 포근한 날을 고대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이었으면 합니다.

'나의 음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삶의 詩 1] 삶- 고은  (0) 2008.02.18
세탁  (0) 2007.12.22
칠월의 소주  (0) 2007.12.22
봄 - 제 길을 찾는  (0) 2007.12.22
그대옆에서  (0) 2007.12.22

+ Recent posts